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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

혹자는 죽음을 앞둔 남자의 삶이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감히 가족영화라 부르겠다. 온 가족이 유쾌하게 볼 수 없음은 유감이나, 그 유감을 나눌 수 있게 될 나이가 되면 언젠가 태어나 장성할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이다.

 

 

2.     그리고 아버지.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눈물을 쉽게 보이면 안되고, 아파서도 안되며, 이성을 잃어서도 안 된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감정통제를 당하는 존재가 바로 아버지이다. 단지 아버지라 불리기에 그런 모습을 덧 씌워야 하는 것은 가혹하다. 그리고 내면의 상처와 소용돌이를 털어놓을 존재가 없는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무거운 짐을 온몸에 끌어안고 살아간다. 중력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세상에, 자신의 몸 하나 부지하기도 힘든 세상에, 가족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부인의 아픔도, 자녀들의 성장도, 모두 그의 몫이다. 오롯이 짊어진 그 짐의 무게 앞에서 많은 아버지들은 멍들고, 병든다.

 

 

3.      

하얀 눈밭에서 만나는 욱스발과 생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욱스발의 아버지. 40대를 언저리에 둔 주인공 보다 아버지는 훨씬 젊고 매력적이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대사의 연속. “올빼미는 죽으면 모구를 모두 토하고 죽는다.” 그 대사는 욱스발의 아들이 책을 읽으며 재현된다. 이는 세 부자의 삶과 죽음을 잇는 일종의 매개체. 

 

욱스발이 가진 죽은 영혼과 대화하고 영혼을 이승 밖의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능력은, 그가 현실에서 짓는 죄를 상쇄시키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종의 인력소개소의 브로커로 일하는 그. 중국인 불법체류자와 세네갈 불법체류자. 그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하고 받는 돈으로 다시 그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연민을 갖는 것은 모순이다. 마치 묏자리를 써주고 죽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는 왜 고통 받는 이들에게서 고개를 돌리지 못했을까? 이는 어쩌면 자신이 받지 못한 부정에서 기인할 지도 모른다. 존재하지 않은 채 이야기로밖에 들을 수 없었던 아버지는 그에게 신기루 같은 존재. 언젠가는 이승에 있었지만, 더 이상 호흡을 잇고 있지 않은, 무덤 속에 들어가있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부재는 주인공에게 상징적이다.

 

힘드냐? 좀 살만하고? 어깨를 툭툭 치며 담배 한대를 물고 술잔을 기울이며 잘 살아내라고 무뚝뚝한 한마디를 하는 아버지의 존재. 이는 미시적 관점에서는 가정에서 자녀들을 보호하는 아버지의 울타리가 가진 막연한 이유이다. 언제나 그 곳에 있어줄 것 같은.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고되어도 고되지 않은 척,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아버지들은 그렇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불법체류자들은 거시적인 울타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국가가 없다. 국가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회적인 방어막이다. 그러나 그들은 돈을 위해, 혹은 기회를 위해 스페인에 불법으로 체류하는 자들. 자의로 모국을 탈출했다는 책임은 추방으로, 혹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4.      

영화에서 아들인 마테오는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단순히 엄마가 조울증을 앓고 있기에 문제가 생겼다고만 보기는 힘들다. 아들을 때리고 후회하고, 아들을 방안에 혼자 두고 딸만 데리고 여행가는, 지극히 정서가 불안한 이 여자. 사실 마람브라는 영화 전체를 그리고 가정을, 사회를 압축한 캐릭터 같다. 혼돈 속에 살고 있고, 정돈되지 않은 채로, 기분에 취해 자신의 병을 가지고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기 원하는 나약한 영혼.

 

 

5.      

그나마 욱스발은 베아가 있었다. 영매 선배누나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정신적 지주. 자신이 귀신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 충격을 어떻게 딛고 일어서 귀천을 떠도는 영혼을 달래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다독거려준, 욱스발에게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

자신보다 훨씬 작은 그녀의 어깨에 안겨서 한없이 울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라도 버틸 수 있었는지도.

 

6.      

이 영화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삶과 죽음 보다, 도덕이 더 큰 것처럼 보인다. 타락과 탐욕으로 얼룩진 현시대에서, 도덕성을 져버리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도하지 않았어도, 자신의 가족을 위해 다른 가족을 희생시켜야 하며, 동시에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도덕의 해이와 책임감의 모순에 더 큰 무게가 실려있는 듯 하다.

 

7.      

이들은 모두 이방인이며, 속하지 않은 자, 그리고 가족에게 소외된 자들이다.

생에서 이방인인 사람은, 사에서는 이방인이지 않을 수 있을까.

 

8.      

영화의 시퀀스를 조각 모음 하여 줄거리를 정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줄거리의 나열은 영화 이름만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본다고 해서 단지 슬픔만 마주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감독의 전작들을 통해, 그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지 어렴풋하게 궤적을 그리고 갔기 때문이다.

막상 불편한 진실들이 산재해 있는 화면에 눈을 맞추는 동안, 나는 그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잠재된 메시지나 장치에 신경을 쓰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순간들에 욱스발이 짊어진 모순된 고통을 응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감독에게 화나는 점이 하나 있다면, 한 영화에 너무나 많은 메시지를 넣어 버렸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생각이 부유하는 것들을 멈추지 못해 고통스러운데 더욱 상념이 많은 밤이 되어버렸다.

끝나고 나면 말 그대로 오만 가지 생각이 들면서 크레딧을 등지고 그냥 일어날 수 없게 된다. 원래 모든 크레딧이 다 지나갈 때 까지 않아있기는 하지만.

 

 

9.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영상과 단어들, , 죽음, 광기, 애정결핍, 사랑, 도덕, 방만, 불법, 준법, 가족, 해이, 해체, 결속, 그리고 다시 처음.

 

 

10.    

결국 나의 후기는 결론을 찾지 못하고 산으로 갔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영화를 마주하면 마음도, 신경도, 정신도 심히 불편해진다.

불편함을 알면서도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눈을 돌리지 않고, 눈물을 흘리고 마주하며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는 것에 감사한 밤이고, 그래서 고마운 감독이자 배우이다.

그리고 내 눈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혼을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일 사고로 죽어도, 내 죽음을 슬퍼해줄 사람이 한 사람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혹 죽게 된다면, 그 감당할 수 없는 사실을 알리고 가슴을 파묻고 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그게 다이다.

 

하나 더. 아버지에게 내일 사랑한다고 전화해야겠다.

생각보다, 남겨진 시간은 길지 않다. 계실 때 더 잘 해야지. 순간적으로 가장 큰 효도는 결혼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어머니께서는 결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시지만, 아버지는 아주 가끔 말을 꺼내신다. 그것도 직접 말씀하지 못하시고 엄마를 통해 전하신다. 손주가 보고 싶으시다며. 나는 그럴 때 마다 동생에게 먼저 얻으시라고 나는 아직 좀 멀었다고 했다.

딸이 자상한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 보다 더 행복한 일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게 한 것만 해도 감독은 가정 평화에 엄청난 기여를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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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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