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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날아오르는 산양과도 같은 구름. 차에서 구름이 어떤 동물을 닮았는지 찾아내고, 보여주면, 7할은 모르겠다고 하고, 3할만 동의하는 우리입니다. 그만큼 생각하는 구조가 다른지도 모르겠어요. 

닿지 않을 것만 같았던 평행선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가 이어짐을 무던히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매일 떨어져 있음을 아쉬워 합니다.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 했던가요. 이제는 당신이 없는 매일을 상상할 수도 없게 되어버렸네요.


2. 

겨우내 게을렀습니다. 힘들게 일한다는 핑계로 많이 먹고, 덜 움직이고, 나태하게 생활하고. 이제 핑계는 그만 대야 하겠지요. 자기관리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니, 혼자만 살아갈 세상이 아니니, 내가 더욱 나를 든든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3. 

새벽녘, 당신이 연주한 기타 소리에 잠에 들려다 깜짝 놀라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말하고 또 해도 끝 없이 이어지는 대화들. 마치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와도 같은.

샘솟는 대화의 원천이 끊이질 않는 당신을 만났으니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괜히, 오늘의 부푼 가슴은 기록해둬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얼마간의 변화와, 정체가 우리를 에워싸겠지만, 두려워 하지도, 섣불리 분홍빛 미래를 꿈꾸지도 말아야 겠습니다. 그저 각자의 하루하루를 묵묵히 지켜가다 보면, 어느새 함께 있게 되겠지요, 라고 생각합니다. 


4. 

그래도 저는 당신의 일상을, 매일의 생각을, 단기의, 중기의, 장기의 고민을 끊임없이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상대자가 되어 감사합니다. 일상과 이상의 사이에서 줄타기 하며, 더 나은 내일을 계획하고, 그래도 둘이 함께할 내일이 더 나을 거라고, 함께라면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인 내가, 섬세하고 치밀한 당신을 만나 다행이기도 합니다. 

서로 떨어져 있어, 아쉬워 했던, 우리 처음 맞는 2월 14일, 이미 15일이 되어 버렸지만.  


5.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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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네인




















여행을 하는 목적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혹자는 말한다. 여행은 도착하는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나는 하늘을 동경한다. 미묘하게 바뀌는 색상의 점진적 변화를 관찰하는 것 보다 행복한 것이 있을까.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매일마다 단 한번도 같지 않은 모습들. 기류가 불안정해지면 남들과 다르지 않게 심장이 콩닥 콩닥 뛰지만, 몽글거리는 성층운들을 보고나면 언제 불안했냐는듯 기분이 말끔히 씻어지고 어느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하늘과 가까이 맞닿을 수 있다는 것.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나는 여행의 의미를 하늘의 변화를 더 잘 관찰할 수 있다는 것에서 찾겠다. 강과 바다와 가까울 경우, 그 낙은 배가 된다. 해의 반영과, 석양의 반영. 감귤색 그라데이션과 청보라색 그라데이션. 가끔은 형용할 수식어를 찾을 수 없을만큼 넋이 빠지게 아름다운 색의 페스티벌. 때문에 나는 주저없이 떠난다. 



기류가 꽤나 불안정했는데, 어느새 미니어쳐 같은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착륙할 시간이 얼마나 남지 않은 까닭이다. 승무원은 가쁜 숨을 진정시키고 기류가 불안정하여 죄송하다는 인사말과 함께 10분안에 제주공항에 내린다고 알린다. 그 누구나 다녀와 봤다는 제주도, 나는 지난 5월, 처음 가보았다. 당시 직장이 건물을 이사하며 3일 휴가가 뜻하지 않게 생겼다. 토, 일, 월. 어린이날이 징검다리로 있는 연휴. 나는 금요일 밤 티켓을 예약하고, 숙소도 선택하지 않은채 비행기에 올랐고, 렌트카도 출발하기 전날 아침에 빌렸다. 그 어느것도 계획적이지 않았다. 공항에서 렌트카 키를 받고, 차에 올라탄 후, 나는 무작정 협재 해수욕장으로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협재에 도착했다. 바로 차에서 내려 한동안 말 없이 서있었다. 어린이날 연휴때문인듯 가족단위로 놀러온 여행객들이 많았다. 그림자, 석양, 바다, 반영, 그리고 점층적으로 진해지고 연해지는 석양의 반사를 한시간여는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몇장의 사진을 찍었다.

 



선명한 붉은색 커플티를 맞춰 입고 놀고있던 젊은 커플.



맞은 편에서 석양을 즐기던 여행객들. 





에메랄드 빛 바다는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웠다. 사실 군도에 가본 기억이 별로 없다. 섬마을의 바다색은 이렇게 다를 것이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한동안 백사장을 거닐다 허기를 느껴 저녁을 먹으러 갔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협재 해수욕장 근처 맛집을 검색해서 얻은 해물뚝배기집을 선택했다. 





재암식당 해물 뚝배기. 8000원에 푸짐한 해물을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 딱게를 좋아하는데, 마산과 창원쪽에 가서 처음 먹어본 기억이 난다. 매우 배가 고팠는데,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밥 한공기를 비우고 금능해수욕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http://map.naver.com/local/siteview.nhn?code=13054086 

상호 ㅣ 재암식당

주소 ㅣ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1748-3

전화번호 ㅣ 064-796-2858

메뉴 ㅣ 성게미역국, 전복죽, 해물뚝배기 등. 대부분 8천원-1만원 선 



재암식당은 협재 해수욕장 바로 맞은편에 있다. 다른 메뉴들도 다 가격대비 맛있는듯 한데 나는 같이 메뉴를 나눌 일행이 없었으니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선택했다. 성게 미역국은 나중에 아침으로 요기하려고 일단 보류했다. 먹는 동안 주인 아주머니가 "아가씨 혼자 여행하는거야? 겁도 없지. 든든히 먹어." 라고 하시길래, "네. 감사합니다." 하면서 천천히 꼭꼭 씹어먹었다.  




그리고 차를 돌려 바로 옆에 있는 금능 해수욕장으로 왔다. 이곳의 금능 마린 게스트 하우스가 오픈한지 얼마 안되었고, 예쁘다는 소식을 5분전 웹서핑으로 알아냈기 때문. 금능 해변도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아직도 저 석양의 그라데이션은 눈에 선하다. 오션블루부터 시작해서 오렌지색으로 샌드위치 되고, 아래는 에메랄드 색과 티타늄 블루가 그라데이션 되었던 황홀한 석양. 하늘과 바다만 봐도 배부르고 모든것을 다 가진것 같은 기분. 



금능 마린 게스트 하우스 1층이다.


http://cafe.naver.com/jejuilmare 

상호 ㅣ 금능 마린 게스트 하우스

주소 ㅣ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 2040 

전화번호 ㅣ 064-796-0800

숙박비 ㅣ 2만원 



밤에 왔기 때문에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밖으로는 야자수가 펼쳐져 있고, 수영장도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이렇게 주변 여행객들과 투숙객들을 위한 카페도 있었고. 깔끔하고 예쁘게 정돈되어 있는 모습. 유럽 여행할 때도 게스트하우스를 많이 이용했지만, 여기 시설은 가격대비 거의 최상급인 편이다.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는 분들이 많이 이용하고, 한림공원과 걸어서 5분거리, 올레길 14코스 전후에 위치해 도보 여행객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곳이라고 한다. 욕실도 매우 넓었고, 위생은 중상 수준. 침구위생은 상. 전체적으로 급하게 고른 숙소치고는 만족스러웠던 곳이다. 금능해수욕장을 바로 옆에 두고 있기에 석양과 일출 모두 자면서 눈 뜨면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1층 카페테리아



카페 안쪽에는 마루와 기타, 해먹이 멋스럽게 놓여있다. 




금능 해수욕장에서 게스트하우스를 바라본 전경 




첫날은 무리하지 않고 일찍 잠들기로 했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밤바다바람을 쐬러 나왔지만,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인데도 제법 쌀쌀했던 기억이다. 한동안 멀리서 지나가는 배를 보다가, 등대 조명이 바다에 비쳐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웹서핑을 하며 다음날 여정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사실 정하기도 전에 잠들어버렸다. 


5개월이 지난 기억을 다시 꺼내어 5개월 전의 그곳, 제주에서 다시 써내려가는 기분은 흥분되면서 아련하다. 5년전, 혼자 파리 여행을 할 때, 일부러 영어로 된 다빈치코드를 가지고 갔었다. 이미 읽었었지만, 상상만 해보던 파리 시내가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을 느끼려 했던 것이었다. 내가 발을 딛는 곳마다 책에 등장하는 것을 보며, 묘한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속의 랭던 교수와 소피가 긴박한 호흡으로 옮겨 다니던 그 장소에 있는 느낌이란. 지금 수개월전 혼자 찾았던 곳을 다시 찾아 회상하는 기분이 그와 꼭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느낌이다. 

여행의 첫날 하루는 매우 빨리 지나갔다. 사실 혼자 장거리 운전을 하는 첫 시도였다.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내 마음대로 렌트를 한뒤 완전 자차보험비용만 완불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해안도로를 나가자 달리는 차들이 없어 안심했고,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하자 콩닥콩닥 뛰는 심장이 잦아들었다. 

모든 여정이 즉흥적이었다. 티켓을 끊은것도, 차를 렌트한 것도, 숙소를 구한것도, 맛집을 찾은 것도. 그러나 첫날 나름의 미션을 완수했다 생각하고, 나는 다음날을 기대하며 눈을 감았다. 오색빛깔로 오팔처럼 반짝이는 석양을 이미 선물로 받았고, 까르르 뛰어놀며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었으며, 아무런 사고 없이 숙소까지 돌아와 잠들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미 떠나온 것 부터가 선물이었다. 







                                                                         

2012년 5월 5일, 나홀로 제주여행 첫째날 여행경비

비행기 운임 ㅣ10만 8천원, 아시아나 제주 왕복티켓 타임세일 

렌트카ㅣ 스파크 48시간 대여, 렌트비 32,000원, 완전대납 자동차보험료 60,000원, 총 82,000원 

공항 통행료 ㅣ 2천 3백원

식사ㅣ 8천원

숙박 ㅣ2만원

간식과 커피 ㅣ7천원

총 22만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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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네인

2012.05.05 협재 해수욕장


혼자 여행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부터였다. 그 전에는 내가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아마 먹고 살기 바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여행을 가는 시간을 내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나에게 선물을 준다 생각하고 홀로 떠났다. 

크게 떠나야겠다 라는 생각은 있었으나, 언제, 어디로, 어떻게, 왜, 어떤 자금으로의 구체적인 계획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나는 무작정 인턴에 지원했다. 그것도 서울에서 5000마일 넘게 떨어진 스위스였다. 막상 일을 저질러 놓고 나서 한동안 부모님께 말하지는 못했다. 붙었다는 발표가 나고서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간신이 입을 떼었다. “저 직장 그만두고 인턴하러 갈거예요.” “어딘데?” “스위스예요.” 

항공료, 체류비, 식비 모두 고스란히 지원자 몫인 프로그램이었다. 유엔 무급인턴은 돈을 내고 가겠다 해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얼마간 모았던 돈을 모두 털었다. 일단 인턴기간은 짧았고,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될지 생각하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계획이란 없었다. 한달정도 체류할 경비는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왕 나간 이상 돌아오고 싶지 않았고, 아니, 쉽게 발길이 돌려지지 않을 것 같았고, 그때의 모자란 경비는 어떻게든 되겠지 주의였다. 

그렇게 무계획으로 떠났다. 해외에 처음 나가 본것이고, 정장을 입고 인턴 생활을 해야 했어서 우둔하게 캐리어를 두개나 끌고가는 실수를 저질렀다. 하나는 정장, 다른 하나는 기본적인 짐들.

그렇게 처음 나가본 외국 땅. 생각보다 너무 잘 적응했다. 인턴 기간이 끝나고는, 순전히 혼자였는데, 나는 내 마음대로 원래 계획했던 루트를 벗어나 정말 무작위로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스위스 대부분의 캔턴을 돌아다니며 골든패스를 몇번은 더 타고, 자전거를 대여해서 올드타운마다 다 돌고, 다시 인턴을 했던 제네바로 돌아와서 한나절을 돌아보고. 

파리로 이동했다가 다시 스위스로 돌아왔다가, 또 다시 파리로 기차를 타고 Gard de Nord 역에서 내렸다. 그 후로는 파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두어달을 더 있었다. 파리의 대부분을 걸어다녔다. 자전거, 걷기, 그리고 간혹 지하철이나 버스타기. 그러며 마치 현지에 잠시 사는 사람처럼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닐 뿐.

무계획의 여행을 사랑하게 된것은 그때 부터이다. 모자란 경비는 동생의 적금을 깨서 부쳐달라고 하는 민폐를 끼치며 나는 있고 싶은 만큼 더 오래 체류했다. 물론 돌아와서 돈을 벌어 동생에게 갚았고, 그 이상으로 동생에게는 잘 해주었지만, 당시 수개월동안 홀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이방인으로 체류했던 기억은 후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언제가 될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계속 해왔고, 기회가 주어지면, 적어도 젊었을 때 나가서 살다가 오자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니까.

그 후에는 시간만 나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강사일을 하며 일년에 한번이라도 휴가를 내기가 쉽지는 않다. 충분히 계획을 세울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닥치면 하는 성격이라, 철두철미하고 치밀하게 뭔가를 계획하는 것을 잘 못한다. 오사카에 갈 때도 충동적으로 떠났고, 부산에 혼자 갈 때도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목적성이 있긴 했지만 별 계획을 세우지 않고 갔다. 안동에 갈 때도 아무런 계획이 없었으며, 춘천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 갈 때는 언어 때문에 고민하면서 갔는데, 정작 도착해서는,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계획 세웠던것을 모두 수정해서 오사카는 물론, 고베, 나라, 교토 우메다등 대부분의 지역을 기차를 타고 돌아보았다.

최근 5월에는 제주에 홀로 다녀왔다. 역시 출발 전날 비행기 티켓을 무작정 끊어서 숙소도 정하지 않고 이동해서 차를 렌트하고, 지도 하나만 들고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녔는데, 공항에서 차를 인도 받고, 무작정 서쪽 끝인 협재와 금능 해수욕장 근처로 가서 일몰을 보고, 마음껏 석양 사진을 찍고, 비교적 새로 지었다는 호스텔에서 하루 밤을 묵으며 짧은 여행루트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를 생각했다. 그러다 이듬날 아침 서울에서 오래 직장생활을 했으나 제주에 매료되어 리조트에서 근무하신다는 분이, 일정이 짧으면 그냥 해안 도로를 타고 절경들을 보며 달리라길래 그 충고 그대로 제주 해안도로를 모두 돌았다. 맛집도 근처에 가서 무작정 검색하고, 계획한 랜드마크들은 생략하거나, 더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렇게 충동적으로 돌아본 곳들은 모두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물론 계획을 철두철미하게 세워 여행하는 것이 체질에 잘 맞는 사람도 있고, 그래야 안심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경비 절감에도 도움이 많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표를 짜고, 방문할 장소를 넣고, 얼마를 써야할지 예산을 세우는 식의 여행은 나의 성격과 잘 맞지 않았다. 어느정도 큰 틀은 마련해 놓지만, 촘촘히 타임라인을 메꾸는 동선은 순전히 내 마음대로인 것이다. 막무가내식으로 돌아보는 것을 좋아하기에,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 편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살면서 많은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가족과 함께 일 수도 있고, 친구와 함께 일수도 있으며, 지금까지 그래왔듯 홀로 떠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이 아직까지는 가장 매력적이라 느낀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도, 홀로 해결해내는 능력을 여행하면서 많이 키웠다. 

이 글을 지금까지 해마에 쌓아둔 여행기의 프롤로그로 쓰려고 한다. 지금까지 밀렸던 오래된 여행기들을 서서히 풀어놓을 생각이다. 언젠가는 홀로 떠나는 것보다 둘이, 또는 여럿이 떠나는 것에 익숙해지겠지만, 그 기억이 더 희미해 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 혼자 용감하게 돌아다니던 시절을 간직하고 또 나누어야 겠다. 

그리고 아직 티켓도 끊어놓지 않았지만, 나는 다음주에 또 어딘가를 무작정 떠날지 모른다. 아마 바로 전날 티켓을 예매할지도. 그리고 또 다른 여정을, 다른 위도와 경도에서의 하늘을 바라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일출과 일몰은 언제 어디서나 가슴을 뛰게하는 에피네프린과도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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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네인

초등학교 2학년이던 91년, 아버지가 당시 SK에서 수입했던 286컴퓨터, 스마트를 구입하시며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경기 북부에서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에, 컴퓨터를 빨리 접하는 것이 매우 드물었던 곳이었지만,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운 좋게도 컴퓨터를 구경할 수 있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는 내가 컴퓨터와 친해지는 것 역시 마다하지 않으셨다.


MS-DOS부터 Windows 7까지. 각종 운영체제와 몇개의 컴퓨터를 갈아치우며 20여년이 흘렀다. 나는 컴퓨터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그렇게 싫어하지도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분해 해보고 조립해보고의 호기심과 열정의 개념이 아니라, 컴퓨터 앞에 상주해 있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컴퓨터가 가져다 준 가장 큰 변화이자 매력은, 오프라인으로만 만날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의 가능성을 미지의 영역으로 확대시킨것에 있다. 통신이라고 해 봐야 HAM, 아마추어 무선통신 밖에 더 있었을까. 컴퓨터가 한번 바뀌고, 모뎀을 달고 나서 처음 PC 통신을 접했다. 아버지는 그것을 바둑을 두는 동호회를 만나는 통로로 사용하셨고, 나는 당시 한창 열을 올리던 성우와 외국 드라마 정보 탐색에 이용했다. 하이텔에서 만나는 다양한 동호회와, 정보들, 그리고 알 수 없는 저 너머의 미지의 사람과의 소통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었다. 


아마 접속이라는 영화가 나왔던 것은 그 무렵이었을것이다. 내가 아직 중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즈음인가. 만남의 통로가 확대되며, PC통신으로 만나 로맨스를 만들고, 결혼까지 했다는 커플들의 소문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동창과 오래된 친구, 그런 친구의 소개를 통해 만나는 다른 친구로, 잠재적 연인 혹은 네트워크를 만날 저변이 확대 되며 정보를 알 수 없는, 온전히 상대방의 소개에 의존해야 하는, 이른바 익명의 상대방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뭐, 꼬맹이었던 그때 뭘 알았겠나. 내가 했던 활동은 엑스파일 동호회, 성우 이규화씨와 서혜정씨 동호회, 그리고 외국 드라마 동호회정도가 전부였고, 경기도 북부에 산다는 지역적 한계는 실제로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주지 못했다. 당시 PC통신의 주체는 10대후반부터 2030이었으며, 시삽으로 활동하는 주축 멤버들은 나보다 이미 적게는 7-8살, 많게는 10살이 많았다. 


그렇게 천천히 커뮤니티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PC통신 비가 많이 나왔는데, 아버지에게는 혼나지 않고 어머니에게 아빠와 내가 함께 혼났다. 그러나 온라인 바둑을 두기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비싼 통신료를 내면서도 꾸준히 통신을 사용하셨다. 시간이 흘러 PC통신의 시대는 저물고, 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프리챌, 다음카페등으로 커뮤니티 인구가 이동했다가, 동창을 찾는 아이러브 스쿨, 다모임이 유행하고, 영어로 채팅을 할 수 있었던 세이클럽도 등장했다가, 야후와 라이코스, 알타비스타가 검색엔진으로 떠올랐고, 이내 그 회사들은 사라지고(이제 남은것은 야후가 유일하다) 다음과 네이버가 주도권을 쥐며 포털사이트 더하기 커뮤니티, 그리고 블로그를 이어간듯 보인다. 비교적 최근에 10대부터 2-30대 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싸이월드, 싸이월드가 저물고 극 초반에 등장한 페이스북과 트위터, 그리고 일인 블로그까지. 인터넷 커뮤니티는 근 10년간 한국 근현대사 보다 더한 격변을 겪었음에 틀림없다. 사실 나의 기억 회상 능력이 그렇게 정확한 것은 아니라 시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는지는 모르겠다. 가입하고, 활동했던 몇개의 사이트들을 찾아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프리챌에 성우 팬클럽을 만들었던것은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어질 줄 몰랐다. PC통신에서 알고 지냈던 몇몇분이 프리챌로 이사오고, 나중에 통신이 저물며 대부분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프리챌이 평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동호회를 만든 사람 치고는 내가 가장 어린 축에 속했는데, 당시 엑스파일과 성우 이규화, 서혜정씨의 광팬이었던 나는 매주 KBS방송국에 팬레터를 보내고, X파일은 한국 방영분과 홍콩 위성채널인 Starworld에서 1주일에 3번 반복 방영하는것을 모두 챙겨보며 그야말로 잉여 덕후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엑스파일을 처음 접했던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전부터 영어 위성방송은 보고 있었고, 부모님은 내가 영어 방송보는것을 장려하시며 전혀 제지하지 않으셨기에, 나는 그야말로 외국 드라마가 하루종일 나오는 Starworld방송을 끼고 살다 시피 했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내가 두번째로 좋아하던 영어를 전공하고, 동시에 영어로 밥을 벌어먹고 살기까지 하지만, 엑스파일이 내게 준 영향은 꽤나 지대하다.


드라마 전반에 등장하던 회의론, 음모이론, 그리고 신비주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대신 두 캐릭터가 가진 상반된 매력에 흠뻑 취해버렸다. 엑스파일을 보기 시작하며 다른 시리즈도 주의깊게 보기 시작했고, 2년쯤 지나자 외국방송이 한국방송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나요?" 라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TV가 최고의 선생님이었어요." 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엑스파일의 팬들, 그리고 엑스파일 성우의 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규화씨의 팬클럽을 만든것은 고1때 였으나, 이미 팬레터는 중학생 때 부터 보내고 있었기에, 커뮤니티 멤버들을 알고 지내기 시작한것은 2-3년이 이미 되어 있었다. 하이텔의 다른 팬클럽과 함께 교류를 하며 이른바 정모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온라인에서만 만나던 사람들을 현실세계에서 보기 시작한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긴 한데, 우린 모두 어쩌면 같은 것을 좋아할 텐데,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 하나로 처음 만났어도 어색하지 않다는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일년에 서너번 만났나보다. 이규화씨 생일에는 생신을 함께 챙겨드리기도 하고.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남은 몇명의 멤버는 아직까지 안부를 묻고 지낸다. 벌써 12년이 훌쩍 지난 일이다.


그 외의 커뮤니티에서 열정적인 활동을 한 기억은 없다. 내가 만들었던 성우 이규화씨의 팬클럽은 나의 대학 진학과, 바빠진 개인 일과에 치여, 내 스스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동시에 프리챌의 사용자수가 급감하고 다른 커뮤니티로의 대이동이 시작되었기에, 점점 희미해져버린다. 관심사 분류에 들었던 테니스, 미국드라마 시리즈, 영어, 그외 잡다한 정보 수집용 카페에 가입하긴 했으나, 테니스 빼고는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 적이 없는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정말 시간을 쪼개 쓰고 살기도 힘들어 지면서 웹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과제할 때 말고는 없어져 버렸다. 


아. 하나 빠뜨릴 뻔 했구나. 대학 1,2학년 때, 학교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를 하면서 동시에 음악에 심취해 있던 때가 있었는데, 당시 도대체 그 체력이 어디서 나온건지, 집에 오자마자 밤 12시에서 새벽 2시정도까지, 인라이브에서 윈엠프로 재즈 방송을 하던 때가 있었다. 시그널도 선곡하고, 매일 방송할 곡을 선곡하고, 내 방송을 정기적으로 듣는 사람이 있던 그때. 아무도 잘 건드리지 않던 재즈라는 장르 때문인지 나는 웬지 모르게 열심히 비정기적으로 방송을 하곤 했고, 잠시 매일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간을 늘리기는 했다. 불면증이 심해진것은 그때 부터였다. 새벽 6시에 일어나 학교에 가서 아침방송을 하고, 좀 정리를 한뒤 여학생 휴게실에서 2-3시간 쪽잠을 자고, 학교 밖으로 나가 통역 아르바이트나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야간으로 미루어 수업을 듣고, 끝나면 10시. 통학거리가 왕복 5시간이나 되는 집에 도착하면 12시가 넘었다. 근데 오자마자 샤워만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방송을 하고, 2시간도 안되는 시간을 잠들었다가 다시 나가고. 아마 미쳤던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그 생활을 반복했는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무려 연애도 했다. 그런 시간과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던건지, 지금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학교 가는 거리가 워낙 길었기에, 버스에서 한시간, 지하철에서 한시간, 왕복으로 매일 3시간을 대중교통 안에서 잠들어 있긴 했다. 그러나 분명 비정상적이고 소모적인 삶이었다. 내어맡겨졌든 혹은 선택했든. 


한동안은 싸이월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런 저런 사진을 올리고, 일기를 쓰고, 글을 올리고. 이벤트에 다발적으로 참여하고. 그 시기가 지나고, 한동안 직장일에 바빠 컴퓨터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 시기가 왔다. 퇴근해서는 아예 컴퓨터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오히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울펜슈타인 3D, Jack's library, Einstein, 프린세스 메이커, 슈팅게임등 등 당시 나름 인기 있었던 2D게임들을 곧잘 하곤 했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부터 게임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그 이후에 나는 어떤 게임기나 컴퓨터, 휴대폰을 만나든, 게임은 전혀 하지 않는다. 흥미를 잃은 특별한 계기는 없었는데, 다른 게임을 접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싸이월드도 시들해지고, 정말 컴퓨터에서 완전히 손을 놓게되는 시기가 등장했다. 커뮤니티는 뭐였고, 온라인은 뭐였는지, 컴퓨터를 하는 이유는 오로지 어쩌다가 웹서핑 하는것이 전부인 그런 시기가 왔다. 온라인 쇼핑을 하거나, 그냥 휘휘 이런 저런 사이트를 돌거나, 블로그, 혹은 해외사이트를 돌다 나오기만 했다. 


그리고 2년전 트위터를 만났다. 


말하는 직업이기에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 말하기를 매우 피곤하게 여겼으나, 천성은 수다쟁이인 내가 나름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주로 어릴 때의 에피소드를 주절주절 거리거나, 어떤 생각에 주제를 잡고 160자 안에서 자꾸 살을 붙여 나중에 이어붙이면 장문을 써나가는 단문 연습장으로 사용했다. 트위터에서 다시 물꼬를 튼 이른바"당" 성격의 커뮤니티에 몇개 가입하기도 했고, 내가 직접 마라톤 당을 만들기도 했다. 


마라톤 당은 만들어 놓고도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게, 트레이닝 런을 하려고 해도 다들 사는 지역이 다르니 시간 맞추기가 힘들었으며, 둘째로는 나 빼고 대다수가 남자분들이라 학교 선배님 한분 빼고는 깜짝 놀랐던것, 마지막으로 실제로 대회에 간다고 만난다 해도 마라톤 대회장은 통신불능상태 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휴대폰으로 전혀 연락이 닫지 않는 이유로 제약이 많았다. 


마라톤당은 부당주였던 분께 거의 부탁을 하다 시피 해서 넘기고, 나는 만든 사람에 대한 책임을 모두 회피하고, 더이상 당을 만들거나 하지는 않기로 다짐했다. 좋은 의도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때 뭔가를 운영하던 그 열정은 살아나지 않았다. 대신 해외에서 만들어진 블로그인데, 한국 사람의 사용자가 낮아 그 루트가 꽤나 폐쇄적이던 텀블러를 만나게 된다. 텀블러에서 비슷한 음악을 듣고, 공연을 가면 만나는 분들과 의외의 우연함으로 커뮤니티가 생긴 곳에 마지막으로 들어가고, 그 곳에서 온라인에서 보던 분들을 다시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경험을 한다.


10년만의 일이다.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다. 성향도, 성격도, 좋아하는 취향도, 배려심이나 이기심의 정도도, 자기포장과 자기 표현의 정도도, 외향성과 내향성도 모두 다르다. 웬지 모르게 음악과 폐쇄적 블로그로 연결된 이 사람들과의 모임에 나는 안심을 했고, 다른 우후죽순의 모임 보다는 더 좋은 사람들이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매우 개인적이었으며, 자주 만나지 않았고, 어쩌다 공연장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우연하게 대학 선배도 있었고,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서로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라는게 있었다. 각자 삶에 충실하고자 노력했을 수도 있고, 이미 지나친 관심이나 가까움은 독이된다는 것을 아는 나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페이스북은 더 복잡한 개념인데, 다른이들에게는 페이스북이 동창들과 교류하는 통로인 반면, 나는 그 모든것을 다 섞어놓은 교집합이다. 직장 동료들이 대부분 외국인이기에, 어떤 포스팅을 올리는데 있어서 큰 제약이나 눈치볼 것이 없기 때문에, 페이스북에 이어진 사람들의 반은 동창, 1/3은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람, 그리고 나머지는 직장 동료라는 독특한 구조가 되었다. 


트위터가 주절주절 수다를 떨며 글쓰기를 연습하는 장소라면, 페이스북은 그냥 다른사람들의 피드를 구독하고, 내가 어디에서 뭐하고 있으며 무엇을 먹고 있는지에 대한 사진을 올리거나, 가끔의 단상을 올리는 곳에 지나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패스, 포스퀘어등, 아이폰을 접하며 가능해진 소셜 네트워크 유비쿼터스는 실로 대단했다. 매우 피상적인 보여주기식 인간관계라 폄하하는 평과, 그 자체로도 어떤 문화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나는 다 수용하기로 했다. 물론 SNS를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트위터는 프로텍트로 잠궈놓고, 그대로 의견 재생산의 도구로 사용하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했으며, 다양한 소셜네트워크 앱이 허브가 되어 서로 연동이 되고, 이어지고, 재생산되는 그 시기를 즐겨왔다. 


1년에서 2년정도 그렇게 지내온 것 같다. 그동안에 잘못 든 습관도, 아예 없애 버린 습관도, 그리고 실제 오프라인 지인들과 재정립한 개념도 많이 있다.


블로그에 포스팅을 올리는 것에 지쳐 1년간 쉰 기간동안, 나는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그리고 페이스북과 패스를 공동으로 활용하며 나의 일상을 전하기에 바빴다.


매일 무엇을 먹고, 무엇을 사고, 어디를 가고에 별 관심이 없는 인간들은 어쩌면 지독히 외로웠던 것일까, 아니면 보여주고 싶어하는 허세심리가 잘 작용한 것일까. 사소한 것에서 부터, 대단한 일 까지, 나는 미주알 고주알 SNS에 일상을 방송하고 있었다. 이는 매우 위험하기도, 동시에 즐겁기도 했다. 다른사람의 반응이 보인다는 것, 내가 만든 음식, 내가 정리한 공간, 내가 방문한 장소, 내가 방문한 레스토랑을 다른사람도 좋아해준다는 것은 한마디로 설명하기에 힘든 감정이다. 어쩌면 주목받고 싶어하는 성격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오프라인의 오랫동안 만나왔던 친구들과 나눌 수 있는 공감대의 한계를 서로 얼굴을 보지도 않는데 매일 보는 것 같다는 착각에 하트를 누르고 댓글을 달았던 것일까. 혹은 그 모든것일까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극소수의 몇몇 만나왔던 사람들과의 관계에 염증이 왔다. 좋으면 좋은거다 라고 생각하고 살아 왔으나,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 생기게 되었고, 연락이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하며, 나는 아예 SNS를 모두 끊고 사용을 일시 정지하기에 이른다. 불편함을 주거나 눈에 거슬리거나, 서로 아예 교류가 없는 사람은 블락을 하거나 차단을 하고, 언프렌드를 한다. 

얼마나 편리한 인간관계인가. 맘에 안들면 그냥 버튼 하나면 끝인거다.

동시에 얼마나 잔혹한 인간관계인가. 역시 맘에 안들면 그냥 버튼 하나로 끝인거다. 나 역시 그렇게 잔혹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줬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기에. 



나 역시 수 많은 실수를 하고, 어리숙하고 미성숙하기도 하고, 감정의 기폭에서 왔다갔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나서는, 그냥 온라인으로 누군가를 믿으며 만나는 것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좋은 인연도 많이 얻었으며, 놀라울 만큼 가까운 사람도 생기게 되었다. 2년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으니. 


오랫동안 각종 통신과 커뮤니티를 넘나는 결과 내린 결론을 그것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멀쩡한 사람과 이상한 사람을 만날 확률은 같다.


다만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자신을 숨기거나 포장할 확률이 높아지며, 알아채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게 다르다. 


만남의 시작이 온라인이었든 오프라인이었든, 서로에게는 지켜야 할 거리가 존재한다. 이른바 배려의 거리. 너무 매몰차게 신경쓰지 않지도 않으며 동시에 너무 심하게 참견하지 말아야 할, 보이지 않는 거리. 온라인에서 만나서 분명 절친이 될 수도 있고,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될 수 도 있으며,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결혼을 할 수도 있다. 그 모든것은 거리를 지켰다가 믿을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겪지는 않았어도 별별 일들이 일어난다는 온라인 세상의 변두리에서 지켜본 결과, 결국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SNS를 이용하는 이들은 목정성으로 크게 나뉜다. 정보전달형, 정보 습득형, 자기 과시형, 리트윗형, 구독형, 발산형, 넋두리형, 친목도모형. 이를 어떻게 적당히 배분하고 퍼센트를 정해 사용할지 역시 자기 마음이다. 다만 누가 어떤 커뮤니티와 SNS를 사용하든 최소한 지켜야 할 예의의 거리를 지켰으면 한다. 제법 친하다고도 할 수 있는 어떤 분을 언팔하고, 보지 않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이는 그분이 주변 사람들을 대놓지 않고 하는 척 하면서 험담하는것에서 기인했다. 험담은 내 주변인으로 시작해 나에게까지 이어졌고,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그사람에게 상처주는 것보다, 내가 그사람에게 상처 받는것을 끊어내는것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간다.


이해되는 사람과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자신이 이해가 가능한 사람인지, 이해받기 위해 한동안 고민을 해야하는 사람인지도 제대로 정의내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 


어디까지 이해를 해야하며,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고, 어디까지 끊어내야하는지 역시 실제로 사람을 만나 부딪히는 것과 같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당신은 어떻게 이 SNS 홍수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가. 아예 아무 것도 사용하지 않거나, 적당히 사용하거나, 주도적으로 사용하거나, 혹은 사용시간을 줄이고 아예 떠나버리거나.


분명한것은 다음 세대가 또 존재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20년 동안 커뮤니티와 온라인 만남, 그리고 모임이 변해왔듯, 다른 유형과 양상을 띈 소통의 도구는 생겨날 것이며, 우리는 또 그 어떤 장에서 익숙해 지기위해 노력했다가 떠나고, 혹은 돌아오기를 반복할 것이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누군가가 반응해주기를 원하는, 혹은 그 반대인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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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네인

좀처럼 높은 구두는 신지 않는데 몇달 전 친구와 자라에 갔다가 눈에 쏙 들어와버린 레드 플랫폼 힐. 집으로 그냥 돌아와 세번을 다시 생각하고 다른 매장가서 다시보고, 그래도 2주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앉아 결국 구매했었다.

가끔 나 자신에게 선물을 준다.

구매 패턴을 생각하면 일년에 한번 정도 인것 같다. 3년 전, 주 7일 근무하며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나 자신의 삶을 거의 버리고 일했던 전 직장에서 퇴사 할 때는 나중에 딸에게 물려줄 수 있을만한 클래식한 가방을 선물했고, (언젠가 딸이 안태어나면 어떡하지.)

직장을 옮긴 후에는 그동안 고생했던 것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 가능하면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가려고 노력했으며,

심난할 때마다 종로로 산책을 다니던 어느 날에는, 사진기를 친구로 삼고 싶은 마음에 일년을 고민하던 사진기를 샀고,

과로로 아파서 입원했다 퇴원한 다음에는 자전거와 비타민을 사주고,

언젠가 가장 아끼던 피아노가 팔리는 것을 보고 흐느껴 울던 소녀는 다 자라 숙녀가 되었고, 그렇게 사고 싶었던 신디사이져와 나를 위한 마이크도 샀다.

소비와 위로의 상관관계가 절대 등식은 아니지만, 위안을 줄 수 있으며 시간을 어루만질 수 있는 물건을 가지기 까지, 꼭 필요한지, 사야만 하는지, 계획에 어긋나는 소비는 아닌지, 지불가능성은 있는지를 고민하는 시간 사이 사이의 가슴 뜀, 그리고 마침내 품에 들어왔을 때 그 이후의 가슴뜀을 기억하는 과정은 선물을 하기에 충분히 가치있는 여정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사달라고 조르는 류의 사람이 아니다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은 적든. 부모님에게 조차 뭔가 사달라고 하는건 언제나 조심스러웠고, 대학 진학한 이후로는 부모님 도움을 한번도 받지 않았다.

꽤나 어두운 터널이 오랫동안 지속됐었다. 터널 밖으로 나오고 나서, 언젠가 부터 갖고 싶은 것들을 내 힘으로 사기 시작하고 나에게 선물할 수 있게 되며, 계획적인 소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 속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타인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 가지는 의미도 크지만, 내가 나에게 필요하거나 갖고 싶은 것들을 고민해서 선물하고 오랫동안 쓸 수 있게 될 때, 문자 그대로 “자립” 했음에 크게 날숨을 쉰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뭔가를 사기보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바라고 사달라고 조르는 일부 사람들. 평행선과도 같은 가치관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이성에게 앙앙대며 물건을 받아내는 여자들 혹은 남자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는. 좀더 마음을 열어놓고 보면, 그게 다른 관점에서의 능력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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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네인


스포일러가 소량 함유되어 있으니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은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시길 바랍니다. 






1.     가족.

혹자는 죽음을 앞둔 남자의 삶이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감히 가족영화라 부르겠다. 온 가족이 유쾌하게 볼 수 없음은 유감이나, 그 유감을 나눌 수 있게 될 나이가 되면 언젠가 태어나 장성할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이다.

 

 

2.     그리고 아버지.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눈물을 쉽게 보이면 안되고, 아파서도 안되며, 이성을 잃어서도 안 된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감정통제를 당하는 존재가 바로 아버지이다. 단지 아버지라 불리기에 그런 모습을 덧 씌워야 하는 것은 가혹하다. 그리고 내면의 상처와 소용돌이를 털어놓을 존재가 없는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무거운 짐을 온몸에 끌어안고 살아간다. 중력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세상에, 자신의 몸 하나 부지하기도 힘든 세상에, 가족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부인의 아픔도, 자녀들의 성장도, 모두 그의 몫이다. 오롯이 짊어진 그 짐의 무게 앞에서 많은 아버지들은 멍들고, 병든다.

 

 

3.      

하얀 눈밭에서 만나는 욱스발과 생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욱스발의 아버지. 40대를 언저리에 둔 주인공 보다 아버지는 훨씬 젊고 매력적이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대사의 연속. “올빼미는 죽으면 모구를 모두 토하고 죽는다.” 그 대사는 욱스발의 아들이 책을 읽으며 재현된다. 이는 세 부자의 삶과 죽음을 잇는 일종의 매개체. 

 

욱스발이 가진 죽은 영혼과 대화하고 영혼을 이승 밖의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능력은, 그가 현실에서 짓는 죄를 상쇄시키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종의 인력소개소의 브로커로 일하는 그. 중국인 불법체류자와 세네갈 불법체류자. 그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하고 받는 돈으로 다시 그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연민을 갖는 것은 모순이다. 마치 묏자리를 써주고 죽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는 왜 고통 받는 이들에게서 고개를 돌리지 못했을까? 이는 어쩌면 자신이 받지 못한 부정에서 기인할 지도 모른다. 존재하지 않은 채 이야기로밖에 들을 수 없었던 아버지는 그에게 신기루 같은 존재. 언젠가는 이승에 있었지만, 더 이상 호흡을 잇고 있지 않은, 무덤 속에 들어가있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부재는 주인공에게 상징적이다.

 

힘드냐? 좀 살만하고? 어깨를 툭툭 치며 담배 한대를 물고 술잔을 기울이며 잘 살아내라고 무뚝뚝한 한마디를 하는 아버지의 존재. 이는 미시적 관점에서는 가정에서 자녀들을 보호하는 아버지의 울타리가 가진 막연한 이유이다. 언제나 그 곳에 있어줄 것 같은.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고되어도 고되지 않은 척,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아버지들은 그렇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불법체류자들은 거시적인 울타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국가가 없다. 국가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회적인 방어막이다. 그러나 그들은 돈을 위해, 혹은 기회를 위해 스페인에 불법으로 체류하는 자들. 자의로 모국을 탈출했다는 책임은 추방으로, 혹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4.      

영화에서 아들인 마테오는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단순히 엄마가 조울증을 앓고 있기에 문제가 생겼다고만 보기는 힘들다. 아들을 때리고 후회하고, 아들을 방안에 혼자 두고 딸만 데리고 여행가는, 지극히 정서가 불안한 이 여자. 사실 마람브라는 영화 전체를 그리고 가정을, 사회를 압축한 캐릭터 같다. 혼돈 속에 살고 있고, 정돈되지 않은 채로, 기분에 취해 자신의 병을 가지고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기 원하는 나약한 영혼.

 

 

5.      

그나마 욱스발은 베아가 있었다. 영매 선배누나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정신적 지주. 자신이 귀신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 충격을 어떻게 딛고 일어서 귀천을 떠도는 영혼을 달래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다독거려준, 욱스발에게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

자신보다 훨씬 작은 그녀의 어깨에 안겨서 한없이 울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라도 버틸 수 있었는지도.

 

6.      

이 영화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삶과 죽음 보다, 도덕이 더 큰 것처럼 보인다. 타락과 탐욕으로 얼룩진 현시대에서, 도덕성을 져버리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도하지 않았어도, 자신의 가족을 위해 다른 가족을 희생시켜야 하며, 동시에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도덕의 해이와 책임감의 모순에 더 큰 무게가 실려있는 듯 하다.

 

7.      

이들은 모두 이방인이며, 속하지 않은 자, 그리고 가족에게 소외된 자들이다.

생에서 이방인인 사람은, 사에서는 이방인이지 않을 수 있을까.

 

8.      

영화의 시퀀스를 조각 모음 하여 줄거리를 정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줄거리의 나열은 영화 이름만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본다고 해서 단지 슬픔만 마주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감독의 전작들을 통해, 그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지 어렴풋하게 궤적을 그리고 갔기 때문이다.

막상 불편한 진실들이 산재해 있는 화면에 눈을 맞추는 동안, 나는 그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잠재된 메시지나 장치에 신경을 쓰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순간들에 욱스발이 짊어진 모순된 고통을 응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감독에게 화나는 점이 하나 있다면, 한 영화에 너무나 많은 메시지를 넣어 버렸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생각이 부유하는 것들을 멈추지 못해 고통스러운데 더욱 상념이 많은 밤이 되어버렸다.

끝나고 나면 말 그대로 오만 가지 생각이 들면서 크레딧을 등지고 그냥 일어날 수 없게 된다. 원래 모든 크레딧이 다 지나갈 때 까지 않아있기는 하지만.

 

 

9.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영상과 단어들, , 죽음, 광기, 애정결핍, 사랑, 도덕, 방만, 불법, 준법, 가족, 해이, 해체, 결속, 그리고 다시 처음.

 

 

10.    

결국 나의 후기는 결론을 찾지 못하고 산으로 갔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영화를 마주하면 마음도, 신경도, 정신도 심히 불편해진다.

불편함을 알면서도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눈을 돌리지 않고, 눈물을 흘리고 마주하며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는 것에 감사한 밤이고, 그래서 고마운 감독이자 배우이다.

그리고 내 눈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혼을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일 사고로 죽어도, 내 죽음을 슬퍼해줄 사람이 한 사람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혹 죽게 된다면, 그 감당할 수 없는 사실을 알리고 가슴을 파묻고 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그게 다이다.

 

하나 더. 아버지에게 내일 사랑한다고 전화해야겠다.

생각보다, 남겨진 시간은 길지 않다. 계실 때 더 잘 해야지. 순간적으로 가장 큰 효도는 결혼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어머니께서는 결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시지만, 아버지는 아주 가끔 말을 꺼내신다. 그것도 직접 말씀하지 못하시고 엄마를 통해 전하신다. 손주가 보고 싶으시다며. 나는 그럴 때 마다 동생에게 먼저 얻으시라고 나는 아직 좀 멀었다고 했다.

딸이 자상한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 보다 더 행복한 일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게 한 것만 해도 감독은 가정 평화에 엄청난 기여를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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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네인

원래 이 블로그를 개설한 목적은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공연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함이었는데, 최근 저의 삶의 50%가 주방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직장 다니는 것 빼고 관심사가 음식만들기로 이동한 덕분에 점점 요리 블로그로 가는 기분이네요.


아까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조리법을 궁금해 하셨던 분들 덕분에 광속으로 포스팅합니다.
콩국수 좋아하시는 분들 많으시죠?
저도 콩국수만 보면 눈이 ♡_♡ 이렇게 변해요. 여름이 되면 자주가는 콩국수 집이 두군데 있습니다.
저렴이의 레전드는 신당시장에 있구요, 비싼 콩국집 레전드는 (적어도 서울에서는) 여의도의 진주집이지요.

그런데 먹고 싶을 때 마다 음식점을 찾아갈 수는 없잖아요. 두부와 우유만 사용하면 영양 만점 콩국수를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원래 엄마가 해주시던 조리법인데, 이미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해요. 메밀면을 사용해서 더 건강하게 만들어 봤어요.




그럼 콩국수를 4계절 즐기는 조리법 시작합니다.


재료: 두부 반모, 우유 반컵, 소금, 참깨, 오이 + 믹서기 님 ♡




먼저 콩국을 만들어 두어야 겠죠? 요즘은 마트에서 콩국을 따로 팔기도 하는데, 두부와 우유만 있으면 초간단하게 콩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일단 두부 반모와 우유 반컵을 준비해 주세요. 두부는 요즘 저렇게 아예 반모로 나온 것도 있어요. 두부를 좋아하는데 요새 두부 가격이 많이 올라서 슬픕니다. 



메밀국수는 꼭 여기 국수를 사주세요. 특정 상표 광고는 아니지만, 봉평이 원래 메밀 산지로 유명하지요. 이 업체 제품은 믿을 수 있습니다.  대형마트 독자상품, PB(Private Brand) 메밀 국수는 뭔가 부족한 맛이 납니다. 홈플러스나 이마트 등지에서 구입할 수 있어요. 한번 사두면 소면 대용으로 모든 국수요리에 꽤 오랫동안 쓸 수 있습니다.


자 이제 믹서기에 두부와 우유를 넣어주세요. 


소금을 넣어주세요. 저는 보통 티스푼 한개정도 분량을 넣습니다. 여러분의 식성에 따라 소금은 조절해주시면 됩니다.  


아예 갈기 전에 참깨까지 같이 넣어주시면 고소한 풍미를 더욱 살릴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이 넣으면 오히려 쓴맛이 나니까 주의하세요.




이제 믹서기님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두부, 우유, 참깨, 소금을 넣고 갈아줍니다. 저는 되직한 콩국이 나오는게 좋아서 우유를 적게 넣은 편입니다. 2인분 이상을 만들 때는 두부와 우유의 양을 1:2로 맞춰 주시면 됩니다. 



믹서기가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 까 싶을 정도로 믹서기는 소중하신 분입니다 =) 다 갈렸네요. 저는 쥬스 만들어 먹는것도 좋아하거든요. 


자. 이렇게 콩국이 완성되었습니다. 뽀얗고 되직하게 갈렸어요. 


냄비에 물을 반정도만 부어 소금을 살짝 넣고 끓여주세요. 가운데 둥둥 떠있는 애들이 소금입니다. 면을 삶을 때 소금을 넣으면 살짝 간도 되고, 쫀득하게 삶을 수 있어요.



이만큼이 1인분입니다. (사실 1.5)인분 입니다. 하하.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었을 때 면이 들어가는 정도가 2인분이예요. 



면을 끓는 물에 넣어줍니다. 


긴 나무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주면 아랫부분 부터 익으면서 결국 다 들어가요. 



막 끓기 시작하기 전에 미리 찬물을 담아 대기하셔야 합니다. 면 끓일 때는 매우 잘 넘치는데, 그럼 가스레인지에 대홍수가 나요.


면을 삶을 땐 끓을 때 찬물을 넣어서 쫀득함을 더해주세요. 이런 과정을 2번정도 반복해주시면 됩니다. 너무 삶으면 퍼지니까 4분-5분정도만 삶아주세요. 면 삶을 때 다른 재료를 준비하거나 한눈 팔면금새 끓어 넘치기 때문에 콩국을 먼저 준비했습니다. 


찬물을 넣고 잠잠해진 상태입니다. 이대로 좀 더 끓여 줍니다. 


이제 면발을 건저내어 찬물에 헹궈줍니다. 찬물에 샤워를 시켜줘야 더 쫄깃해지지요. 


물기를 짜내고 채반에 받쳐 놓습니다.


오이는 채를 썰어 준비합니다. 


아까 준비해 두었던 콩국위에 국수를 얹고, 참깨를 살짝 더 뿌려줍니다. 오이는 옆에 아무렇게나 넣어주세요. 어차리 먹으면 다 섞이니까 하핫. 메밀면이라 웬지 더 건강해 보이죠?

우유와 두부라서 진한 맛이 나지 않을 것 같죠? 소금과 우유의 양으로 조절하면 매우 진한맛을 낼 수도 있답니다.


조리과정을 찍느라 실제 조리시간은 20여분 걸린 것 같은데,  그 과정 모두 생략하고 조리에만 집중하면 정말 10분-15분만에 뚝딱 만드는게 가능합니다. 
이제 4계절 내내 콩국수 즐기기, 가능하겠죠? 모두 행복한 식사시간 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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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네인

저는 요리를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예전에 음식점을 하셨기 때문에 요리의 달인이셨는데, 저는 주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고를 쳐서 제가 요리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고살았거든요. 

I was not a type of person who enjoys cooking. My mom was a cook when I was young, so, literally she has been a sheer cook, but I was a trouble maker every time I helped her, so I had thought that leaning how to cook was a long way to go.
 
반면 여동생은 과장 약간 보태서 매우 어릴 때 부터 현모양처 기질을 200% 보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는 더욱 위축되어 불과 3년 전 까지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끓이기와 콩나물국 끓이기가 전부였어요.

On the other hand, my sister is a nature born cook like she inherited my mon's gift.  I was not that confident in cooking because of her. What I could cook was just how to make either ramen or bean sprout soup.

전환점은 다름아닌 여행과 독립이었습니다. 건강이 악화되어 3년 전 직장을 그만둬야만 했었고, 잠시 해외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가, 그 후에는 혼자 여행을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생존 본능으로 시작하게 된 요리가 이제는 취미가 되었네요. 3년 전 생일, 8인분의 스파게티를 처음으로 만들어 보았는데,그게 맛있었거든요. 덕분에 제가 만든 요리를 다른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되었지요.

The sudden turning point came to me without notification. Traveling and living alone. I had to quit my job that I had a little tumor on my vocal code. I worked as an intern for a while and then traveled alone. Wanting to survive, I had to learn how to cook. On top of that, I had a chance to cook spaghetti for 8 people, and it was a huge success. Since then, I figured out cooking is a wonderful thing.



사실 저는 빵을 구울 때 외에는 요리책을 참고하지 않습니다. 빵을 굽거나 쿠키를 만들거나 할 때는 계량이 매우 중요하기에 당연히 책이나 다른 분들의 블로그를 참고하지만, 한식을 만들 때는 전적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엄마에게 의존하거나, 그냥 마음대로 하는 편입니다. 

In fact, I don't refer to a cooking book or recipe when making Korean food. it's totally different when it comes to baking, measuring ingredients is crucial that I have to refer to a book or other blogger's recipe. 

그래서 맛있게 나온 요리의 조리법은 혼자 기억하고 있다가 계속 쓰는 편인데, 트위터를 쓰기 시작하며 음식 사진을 올렸다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생겨서 하나 하나 포스팅을 하는게 재미있네요.

So I remember recipes as an intuition of cooking, and subtly vary them. After I got started twitting, posting recipe is kind of interesting for me.

오늘은 사설이 너무 길었네요. 이제 본격적으로 궁중떡볶이 만들기 조리법을 살펴볼게요.

To get things straight, Let's learn how to cook soy sauce Topokki

재료: 떡 - 떡은 냉동해 둘 일이 많잖아요. 일반 떡볶이 떡은 해동하기가 매우 불편합니다. 떡집에서 긴 쌀 가래떡 아래와 같이 자른 것을 봉지채 팔거든요. 그 떡은 해동하기도 편하고, 쌀 100% 떡이니까 더 맛있어요.

Ingredients - Sliced rice cake, several types of mushrooms, carrot, Chilies, Broccoli, Bay leaf, sesame, soy sauce 


표고버섯, 새송이버섯, 당근, 청양고추, 마늘, 브로콜리, 월계수잎, 요리당, 참깨, 간장 이 더불어 필요합니다.


(영어는 To be continued 할게요.)

소고기를 좋아하시는 분은 같이 볶아서 넣으면 좋지만 저는 그냥 냉장고에 있는거 이것저것 끄집어내서 만들었습니다. 원래 파도 넣어야 더 맛있습니다. 저는 파가 없어서 대신 고추를 넣었어요. 아이들에게 해주실 때는 고추 대신에 파를 넣으셔야 될거예요=) 



일단 냉동해 둔 쌀떡을 꺼내서 물에 행구면서 해동합니다. 몇번 헹궈주고 물에 담궈 놓은 상태로 더 녹여주세요. 



당근, 브로컬리, 버섯, 고추, 마늘을 모두 씻어서 준비합니다.
저는 버섯을 매우 !!! 좋아하기 때문에 웬만한 음식에 다 집어넣는 편입니다. 특히 궁중 떡볶이에는 표고버섯이 잘 어울립니다. 얇게 썰어주시구요. 새송이버섯도 반달썰기 해주시면 조리하기 편합니다.
당근도 반달썰기를 , 브로컬리는 윗부분 송이를 따로 떼어주시고,
살짝 칼칼한 말을 위해 청양고추를 넣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마늘. 마늘은 4개정도 다져서 준비해주세요.
포인트는 월계수잎. 향이 강하니 많이 넣지 마시고, 3-4잎만 넣어주세요. 
 
(원래 이렇게 안해먹습니다. 막 썰어서 집어넣지요.)
이렇게 재료준비가 끝났습니다. 



궁중떡볶이의 주인공은 떡이 아닌 간장과 요리당입니다. 




이제 프라이팬에 물을 1/3만 잠기게 넣어주세요. 물을 너무 많이 넣으면 간장 간 맞추기가 힘들어지거든요. 물이 끓기 시작하면 간장만 먼저 넣어주세요. 간장은 사실 각자 짜게 먹고 싱겁게 먹고의 정도가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지표는 없지만 저는 대충 넣거든요. 분량은 파리바게트에서 파는 푸딩컵 반정도면 충분합니다. 



맨 처음에 다진 마늘부터 넣어주세요. 그리고 나서 야채들을 모두 투척해줍니다. 


그 다음에 떡을 넣고 나무주걱으로 뒤적여 주세요. 다음에 요리당을 휘휘 뿌려주시면 됩니다. 전까지는 찌개처럼 끓던 떡볶이의 점도가 높아지면서 끈적해집니다. 
떡이 아래쪽으로 내려가도록 뒤집어서 거의 안보이지만, 떡을 먼저 넣으면 너무 퍼져서 쫄깃한 맛이 사라지니 야채와 버섯을 먼저 넣어 숨을 죽여주세요.
그대로 5-10분정도 졸여주시면 됩니다. 


완성된 궁중 떡볶이 입니다. 재료는 그때마다 냉장고에 있는것들을 꺼내서 응용해주시면 됩니다. 파프리카가 있으면 파프리카를 넣고, 버섯은 더 넣으셔도 되구요, 소고기를 볶아서 넣어주셔도 됩니다. 원래 우리가 흔히 부르는 궁중 떡볶이는 소고기까지 있는 요리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고기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요.


2인분입니다. 배고프다고 징징대는 동생을 위해 야식으로 슉슉 만들었는데, 사진 찍다가 동생이 더 징징대서 실랑이를 벌였네요.
달달하고 영양가도 높으니까 아이들 간식으로 사랑받는 엄마 아빠가 되실거예요.


다음에는 간편 콩국수를 가지고 찾아올게요. ♡

영어와 한글을 같이 사용해서 블로그를 꾸려가려고 하는데, 아직 미흡한 점도 많고, 콩글리쉬나 어색한 표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꾸다가 도중에 영어가 끊길 수도 있어요. 보시다가 고칠 점이 있으시면 마구마구 지적해주세요.

졸려서 여기까지만 올리고 자야 할 것 같은데, 아마 중간중간 수정되어 다시 올라갈거예요. 달달한 칭찬, 쓰디쓴 충고 모두 받으니까 좋은 의견 많이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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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네인

춘곤증을 이겨낼 상큼 달콤한 딸기 쉐이크를 준비했습니다. 사실 포스팅 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만들기가 매우 쉬워요. 5분이면 뚝딱. 




일단 싱싱하고 야무지면서 달달한 딸기를 준비합니다. 시장가서 득템하는 기쁨이 쏠쏠한데 딸기 한박스 6000원에 업어왔습니다.


재료: 딸기 , 우유, 요리당(꿀이나 올리고당으로 대체 가능, 설탕이나 시럽도 OK) 끗! 




딸기를 잘 씻어서 믹서기에 넣습니다. 두잔 기준으로 750ml선에 닿게 넣었어요.



우유를 딸기가 반쯤 잠기게 넣어줍니다. 여기에 나오진 않았지만 설탕 대신에 요리당 한큰술이나 꿀 반큰술을 넣어줍니다. 단맛을 즐기지 않으시면 아예 안넣으셔도 상관 없어요. 시럽이나 설탕 대신 요리당, 올리고당이나 꿀이 훨씬 좋아요. 


그냥 믹서기에 전원을 넣어주고 막 돌려주세요. 30초면 충분 =) 


열심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D




다 돌아갔어요. 후훗.




완성된 딸기 우유예요. 촘촘히 반짝거리는 딸기 씨앗들.



위에서 보면 별로 예쁘진 않지만 이런 모습입니다. 


두잔이 나와요. 한잔은 여기에 


또 한잔은 여기에 




컴퓨터를 하면서 홀짝 홀짝 마십니다 후훗. 



인스타그램으로 보정한 샷이에요.


사실 생과일 주스 사먹으면 기본 3-4000원은 들잖아요. 사다가 집에서 갈아먹으면 훨씬 싱싱하고 맛있는 딸기우유를 즐길 수 있습니다. 상큼달콤한 연분홍 딸기우유 아이들에게 만들어줘 보세요. 너무너무 좋아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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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네인

 

 


 

 

 

그녀의 성을 보면 살짝 눈물이 난다.

작년 이맘때 즈음, 그녀의 남편이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리고 얼마나 사랑했을까.

 

언젠가부터 어쿠스틱한 음색과 목소리가 마음에 와닿기 시작했다. 낙엽이 사각대는 목소리 같기도 하고, 해변가 모래를 천천히 거니는 느낌이기도 하고, 햇살좋은 가을 날 공원에서 뒹굴며 책을 읽는 느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진솔한 노랫말, 꾸밈과 기교는 없지만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 어쿠스틱한 싱어송라이터들은 삶이 곧 음악이며, 그 공통분모의 관계를 통해 음악을 듣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사람들이다.

 

코린 베일리 래의 목소리는 다른 싱어송라이터와 사뭇 다르다. 자조 적이지 않고, 적당히 섹시하며, 끈적한 느낌이 있지만 동시에 깜찍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마치 블루베리 잼이 들어있는 치즈케익 맛 아이스크림을 먹는 기분이 드는 목소리이다. 분명 소울풀 한 창법이 가능 할 목소리지만, 코린은 담백하게 노래 부르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며, 본인이 쓴 가사에 어떤 느낌의 목소리로 강약을 조절해서 농담을 주어야 할지 안다.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기타를 치고 눈을감고 노래부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 영혼의 사진을 담고 있는듯 해서 같은 여자가 봐도 빠져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리 들어도 다시 듣고 싶은 Like a star. 그리고 그 노랫말이, 마치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남편을 보며 만든것같아 이제는 들으면 들을 수록 가슴 한켠이 시려지는 그런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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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like a star across my sky

마치 내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 처럼
Just like an angel off the page

마치 종잇장을 떠난 천사 처럼
You have appeared to my life

넌 내 인생에 나타난거야
Feel like I'll never be the same

다신 난 예전의 나로 못 돌아갈 것 같아

Just like a song in my heart

마치 내 마음속 노 처럼
Just like oil on my hands

마치 내 손에 묻은 기름 처럼
Oh, I do love you

오, 난 널 정말 사랑하는 걸

Still I wonder why it is

아직도 왜 이런건지 궁금해
I don't argue like this

난 이런 말싸움 안하는걸

With anyone but you

오직 너만은 빼고
We do it all the time

우린 서로 똑같이 하잖아
Blowing out my mind

내 마음을 압도 해

You've got this look I can't describe

넌 내가 표현 못할 모습을 하고 있어
You make me feel like I'm alive

넌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줘
When everything else is a fade

모든게 바져 사라질 때에도
Without a doubt you're on my side

의심없이 넌 내 편에 속해

Heaven has been away too long

천국은 항상 너무 멀리있었어
Can't find the words to write this song

이 노를 쓸 말을 모르겠어
Oh, your love

오, 네 사랑

Still I wonder why it is

아직도 왜 이런건지 궁금해
I don't argue like this

난 이렇게 말싸움 안하는 걸
With anyone but you

오직 너만은 빼고
We do it all the time

우린 서로 똑같이 하잖아
Blowing out my mind

내 마음을 압도 해

I have come to understand

나 이제 이해하게 됬어
The way it is, it's not a secret anymore

중요한 것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란 거야
'Cause we've been through that before

왜냐면 우린 이미 전에 겪어왔었으니까
From tonight I know that you're the only one

오늘밤 부터 난 네가 오직 너 하나 뿐임을 알아
I've been confused and in the dark, now I understand

그동안 어둠 속에서 혼란스러워 했지만, 나 이제 이해하겠어

 I wonder why it is

왜 이런건지 궁금해
I don't argue like this

난 이런 말싸움 안하는걸
With anyone but you

오직 너만은 빼고
 I wonder why it is

왜 이런건지 궁금해

I won't let my guard down

난 내 경계를 안 거둘거야
For anyone but you

오직 너에게만은 빼고
We do it all the time

우린 서로 똑같이 하잖아
Blowing out my mind

내 마음을 압도 해

Just like a star across my sky

마치 내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 처럼
Just like an angel off the page

마치 종잇장을 떠난 천사 처럼
You have appeared to my life

넌 내 인생에 나타난거야
Feel like I'll never be the same

다신 난 옛의 나로 못 돌아갈 것 같아
Just like a song in my heart

마치 내 마음속의 노처럼
Just like oil on my hands

마치 내 손에 묻은 기름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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