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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촘스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4.28 노암 촘스키-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1)
  2. 2011.04.28 노암 촘스키-지식인의 책무



그는 어떻게 이다지도 신랄하고 톡톡쏘는 현실적인 비평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양심적으로 늘어놓을 수 있단말인가.

나는 책장을 펼치고 두번째 책장을 덮을 때 까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약간은 실소했고

약간은 통쾌했다.

전세계의 전반적인 문제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촘스키의 명쾌한 해석은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어떤 통찰력을 가지고 살아가야 제 3자의 시각에서 참여자로 살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는 미국의 힘을 비판한다.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진짜 권력은 무엇일까.

세상을 움직이는 진짜 힘은 무엇일까.

진짜 원동력은 무엇일까.

 

지난 수 세기간 세상은 가진자들의 세상이었다. 그들의 잔치였고, 그들이 가진 힘을 나눠갖지 않으려는 치열한 몸부림이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사라진지 오래라고 생각했다.

극 소수의 사람들만 진정한 상류층이라 일컬을 수 있는 사회적 책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외 대다수는 상류층 답지 않은 상류층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중중의 일부는 알면서도 묵인했고, 저항할 힘을 부당하게잃기도 했으며, 본인이 피해볼까 두려워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기도 했고,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살기도 했다.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진짜 권력은 절대적이지 않다는것을 깨달았다.

대중을 무시하고, 대중을 휘두르려는 권력은 결국 역사가 심판한다는것도 깨달았다.

왜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멀고 먼 조상들이 이미 깨닫고 경고하거나, 그들의 무지와 탐욕으로 인해 끝으로 더 빨리 치닫았던 그 과거를 되풀이 하려고 하는가.

버블경제가 뻥 터져버리고 전세계적으로 침체기를 맞고있는 요즘,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재임할때 한 라디오 진행자와 대담했던 내용을 책으로 옮긴 촘스키의 혜안은

10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놀랍고 명쾌하다.

 

나는 프롤레탈리아이다.

한국에서는 프롤레탈리아가 없었으니, 서민층에 분류를 해 넣어야 겠다.

그렇다고 해서 대규모의 저항과 촛불시위를 옹호하는 입장도 아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1%의 엘리트는 믿지 않는다.

세상을 구성하고 움직이는것은 결국 사람이자 서민이라고 믿는다.

내가 서민 층에 속해있기때문에 서민의 힘을 주장하는것은 아니다.

우리는 한때 서민이었으며, 한때 지독하게 가난했었고, 한때 그 가난에서 벗어나려 온갖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이미 부유했던 사람이 부유한 경우와, 가난을 비집고 나와 가난이 아닌 삶, 윤택한 삶으로 탈바꿈 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그들보다 더 많은 개체수의 일반인들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지독한 노동을 한다.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그들은 평생 노동을 한다. 그 노동의 가치는 참으로 소중하고 없어서는 안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노동의 가치에 퇴색을 강요하고 한때 치열하게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생각해봐야 할 20대는 스펙만들기에 몰두하다 진정한 젊음의 시간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과 일반인들은

과연 길을 잃지 않고 각자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것일까.

그리고 그들을 이끌겠다고, 대신하겠다고 나선 우리의 대표자는 과연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만한 책임감을 가진 대인인것일까.

 

미국과 한국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강대국이고 약소국이기때문에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는것이 아니다.

건국의 배경이 다르고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다르고 정치제도가 다르다.

그러나 미국이 도움이라는 명목하에 한국을 견제하고, 어떻게 이용할까 고심하고, 어떻게하면 기어오르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우리 역시 충분히 우리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이, 한나라의 정치부가 계속해서 속박당하기를 원하는, 힘을 얻어타서 흘러가기 원하는 그 불합리한 상황의 연속에 놓여있다는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는 진정한 권력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대중이 무지하기를 원하고 그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권력은 머지않아 종말을 맞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그렇게 오랫동안 이런식으로 대중을 휘둘러온 권력역시 머지않아 종말을 맞는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아무리 대중이 지혜로워 졌더라도,

대중의 개개인은 피해를 보고 싶은 생각이 없기때문에 단체행동으로 눈밖에 나는행동을 불사하진 않을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들어달라고 소리를 쳐도, 촛불을 들어도 이미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어떻게든 대중을 유린하려는 정부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대중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모인 그 곳에서,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그 열기를 이용하는 소수의 난감한 모습도 보이고,

과연 우리는 언제나 한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언제나 발차기와 주먹질일 없는 국회를 볼 수 있을지

꽤나 앞길이 깜깜한것처럼 느껴지지만,

 

나는 이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불특정 중수의 사람들과

개인의 책무와 함께 개인의 사회적인 책임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어떤 입장에 있든지 조금은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실마리는 곳곳에 놓여있다고 믿고싶다.

 

나는 그런 사람들 중에서 어디에 서있는 것일까.

약간의 고민과 약간의 통찰은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는것일까.

물론, 가능하다.

매일의 행동이 더해진다면.

 

역시. 촘스키의 낭창한 말투로 듣고싶은 최고의 구절은

"부패한 정부는 모든것을 민영화한다."

인천공항이 매각된다는 소문이 도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고있나 라는 의문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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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네인




미국의 살아있는 지성 촘스키.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발전했다고 생각되는 유일한 한가지는

지식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그나마 존재한다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누군가는 대놓고 현 집권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비판할 수 있고,

노암 촘스키는 거의 한세기 동안 미국을 비평한다.

미국이라는 힘을 비평한다.

 

그의 비평은, 말만 살아있고 다른사람을 죽이는 류의 피상적인 비평이 아니다.

혜안과 통찰을 가진, 세계와 미국에 대한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고민과 연구끝에서 비롯되고 점진되는 비평의 연장선이다.

그는 수학을 전공하고 언어의 수학화를 이룩한 전설적인 학자이다.

미국에서 교육받고 자신의 천재성을 미국에서 인정받아 그 누구보다도 이른나이에 MIT의 석좌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기회를 제공한 나라를,

자신에게 평생의 연구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나라를 시시 때때로 비판한다. 비평하고 또 비판한다.

그것은, 정말 의미있는 일이다. 자신이 연구할 수 있는 터를 제공해준것과는 별개로

그는 진정 세계의 움직임을 읽고 있는것이다.

세계의 "힘" 이 어떤 것을 향유하고 어떤 곳으로 이동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가진것이고,

적어도 자신이 깨닫고 느낀 선에서 대중들에게 지혜를 제공하려고 하는 양심있는 지식인인것이다.

 

나는 지식인의 책무로 그와 처음 만났다.

사실 대학에서 이주은 교수님께 수업을 들을때, 촘스키가 이룩한 문장구조이론, 소위 syntax를 접했지만,

나는 그가 지식인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대화하고 싶었다.

 

"writers and intellectual responsibility"

직역하면 작가와 지성인의 책무 정도 되겠다.

 

교육받아 세상의 흐름을 읽는 사람들,

읽는것에 그치지 않고 기류를 만들고, 때로는 이끌기 까지 하는 지식인의 책무를, 촘스키는 양심적으로 고백하고 의미있는 메세지를 던진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이해하기 싫거나, 이해하기 복잡하거나, 이해해봤자 소용없는 일들의 뒤에 그는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것을 인정하고,

그 얽힌 고리를 풀어가는것은 결국 지식인들의 책무라고 일축한다.

돈이 돈을 만들고, 돈이 악을 만들고, 돈이 선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는 지로 계몽을 하는것을 자신의 평생의 업으로 선택한 사람이다.

더 넓은 통찰을 가진것을 대중에게 설파하기로 결심하고 평생 그렇게 해 왔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고 서양에서만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좌파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는 진보주의자인것이다.

 

나도 언젠가 더 많은것을 읽고, 더 많은것을 느끼고, 더 나은 위치에 가게 될 수 있다.

그 날이 지금보다 더 행복할거라 상상하진 않는다.

더 고되고, 더 책임이 막중하고, 더 고단한 삶일 수 있다.

그러나 여운을 남기고, 뒷부분을 누군가 더 써주기를 바라는것처럼 지식인의 책무를 퇴고한 촘스키처럼,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전문 연구분야속에서 연구를 하면서 누구나가 그렇듯 살아 생전에 연구를 좀처럼 끝낼 수 없다면 후손에게 숙제로 남기면서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대중에게 깨어있는 지식을 전달하고 싶다.

 

나만 옳다고 주장하거나,

나를 따르라고 주장하는것은 큰 오산이다.

때로는 쓴소리가 더 큰 약이되고 발전의 힘이 되며,

비평을 수렴할 줄 아는 사람이 큰 사람이 된다고 믿고있다.

 

촘스키의 책을 읽으면서 오래간만에 생각했다.

 

"세상에는 살아있는 지성이 있어서,

이미 운명을 달리한 지성도, 그 팔딱팔딱 숨쉬는 것 같은 소중한 지식을 남겨주셔서

지식인들은 살아갈만한 세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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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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