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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09 [prologue] 무계획 여행

2012.05.05 협재 해수욕장


혼자 여행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부터였다. 그 전에는 내가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아마 먹고 살기 바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여행을 가는 시간을 내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나에게 선물을 준다 생각하고 홀로 떠났다. 

크게 떠나야겠다 라는 생각은 있었으나, 언제, 어디로, 어떻게, 왜, 어떤 자금으로의 구체적인 계획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나는 무작정 인턴에 지원했다. 그것도 서울에서 5000마일 넘게 떨어진 스위스였다. 막상 일을 저질러 놓고 나서 한동안 부모님께 말하지는 못했다. 붙었다는 발표가 나고서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간신이 입을 떼었다. “저 직장 그만두고 인턴하러 갈거예요.” “어딘데?” “스위스예요.” 

항공료, 체류비, 식비 모두 고스란히 지원자 몫인 프로그램이었다. 유엔 무급인턴은 돈을 내고 가겠다 해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얼마간 모았던 돈을 모두 털었다. 일단 인턴기간은 짧았고,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될지 생각하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계획이란 없었다. 한달정도 체류할 경비는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왕 나간 이상 돌아오고 싶지 않았고, 아니, 쉽게 발길이 돌려지지 않을 것 같았고, 그때의 모자란 경비는 어떻게든 되겠지 주의였다. 

그렇게 무계획으로 떠났다. 해외에 처음 나가 본것이고, 정장을 입고 인턴 생활을 해야 했어서 우둔하게 캐리어를 두개나 끌고가는 실수를 저질렀다. 하나는 정장, 다른 하나는 기본적인 짐들.

그렇게 처음 나가본 외국 땅. 생각보다 너무 잘 적응했다. 인턴 기간이 끝나고는, 순전히 혼자였는데, 나는 내 마음대로 원래 계획했던 루트를 벗어나 정말 무작위로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스위스 대부분의 캔턴을 돌아다니며 골든패스를 몇번은 더 타고, 자전거를 대여해서 올드타운마다 다 돌고, 다시 인턴을 했던 제네바로 돌아와서 한나절을 돌아보고. 

파리로 이동했다가 다시 스위스로 돌아왔다가, 또 다시 파리로 기차를 타고 Gard de Nord 역에서 내렸다. 그 후로는 파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두어달을 더 있었다. 파리의 대부분을 걸어다녔다. 자전거, 걷기, 그리고 간혹 지하철이나 버스타기. 그러며 마치 현지에 잠시 사는 사람처럼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닐 뿐.

무계획의 여행을 사랑하게 된것은 그때 부터이다. 모자란 경비는 동생의 적금을 깨서 부쳐달라고 하는 민폐를 끼치며 나는 있고 싶은 만큼 더 오래 체류했다. 물론 돌아와서 돈을 벌어 동생에게 갚았고, 그 이상으로 동생에게는 잘 해주었지만, 당시 수개월동안 홀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이방인으로 체류했던 기억은 후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언제가 될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계속 해왔고, 기회가 주어지면, 적어도 젊었을 때 나가서 살다가 오자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니까.

그 후에는 시간만 나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강사일을 하며 일년에 한번이라도 휴가를 내기가 쉽지는 않다. 충분히 계획을 세울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닥치면 하는 성격이라, 철두철미하고 치밀하게 뭔가를 계획하는 것을 잘 못한다. 오사카에 갈 때도 충동적으로 떠났고, 부산에 혼자 갈 때도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목적성이 있긴 했지만 별 계획을 세우지 않고 갔다. 안동에 갈 때도 아무런 계획이 없었으며, 춘천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 갈 때는 언어 때문에 고민하면서 갔는데, 정작 도착해서는,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계획 세웠던것을 모두 수정해서 오사카는 물론, 고베, 나라, 교토 우메다등 대부분의 지역을 기차를 타고 돌아보았다.

최근 5월에는 제주에 홀로 다녀왔다. 역시 출발 전날 비행기 티켓을 무작정 끊어서 숙소도 정하지 않고 이동해서 차를 렌트하고, 지도 하나만 들고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녔는데, 공항에서 차를 인도 받고, 무작정 서쪽 끝인 협재와 금능 해수욕장 근처로 가서 일몰을 보고, 마음껏 석양 사진을 찍고, 비교적 새로 지었다는 호스텔에서 하루 밤을 묵으며 짧은 여행루트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를 생각했다. 그러다 이듬날 아침 서울에서 오래 직장생활을 했으나 제주에 매료되어 리조트에서 근무하신다는 분이, 일정이 짧으면 그냥 해안 도로를 타고 절경들을 보며 달리라길래 그 충고 그대로 제주 해안도로를 모두 돌았다. 맛집도 근처에 가서 무작정 검색하고, 계획한 랜드마크들은 생략하거나, 더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렇게 충동적으로 돌아본 곳들은 모두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물론 계획을 철두철미하게 세워 여행하는 것이 체질에 잘 맞는 사람도 있고, 그래야 안심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경비 절감에도 도움이 많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표를 짜고, 방문할 장소를 넣고, 얼마를 써야할지 예산을 세우는 식의 여행은 나의 성격과 잘 맞지 않았다. 어느정도 큰 틀은 마련해 놓지만, 촘촘히 타임라인을 메꾸는 동선은 순전히 내 마음대로인 것이다. 막무가내식으로 돌아보는 것을 좋아하기에,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 편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살면서 많은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가족과 함께 일 수도 있고, 친구와 함께 일수도 있으며, 지금까지 그래왔듯 홀로 떠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이 아직까지는 가장 매력적이라 느낀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도, 홀로 해결해내는 능력을 여행하면서 많이 키웠다. 

이 글을 지금까지 해마에 쌓아둔 여행기의 프롤로그로 쓰려고 한다. 지금까지 밀렸던 오래된 여행기들을 서서히 풀어놓을 생각이다. 언젠가는 홀로 떠나는 것보다 둘이, 또는 여럿이 떠나는 것에 익숙해지겠지만, 그 기억이 더 희미해 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 혼자 용감하게 돌아다니던 시절을 간직하고 또 나누어야 겠다. 

그리고 아직 티켓도 끊어놓지 않았지만, 나는 다음주에 또 어딘가를 무작정 떠날지 모른다. 아마 바로 전날 티켓을 예매할지도. 그리고 또 다른 여정을, 다른 위도와 경도에서의 하늘을 바라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일출과 일몰은 언제 어디서나 가슴을 뛰게하는 에피네프린과도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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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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